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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도 : 도시간

인간의 살갗은 순간 뜨거워졌다 순간 차가워진다. 변덕스러운 날씨가 인간을 괴롭힌다. 추위에도 더위에도 약한 종이다. 인간종의 피부는 날씨에 따라 몸을 무언가로 감싸주어야 한다. 그 무언가는 유행이다. 털이 풍성한 비인간종을 갖은 도구로 움직이지 못하게 찍어 내리고 그들의 보호막을 뜯어낸다. 인간종은 공동체를 중시한다. 너도 하면 나도 해야만 하는 무리에서 튀면 안 된다. 화려하게, 그러면 화려하게. 과시적으로, 그러면 과시적으로. 우리는 하나다.

비인간종의 털 유행 시대가 끝나고, 석유화학공장에서 나오는 플라스틱으로 실을 뽑아 만든 PET로 몸은 두른다. 페트병의 PET 유행은 슈퍼 울트라급 속도로 인간종에게 유희를 안겨다 준다. 유행과 유희의 만남은 이웃 인간종의 열 손가락에서 시작된다. 부지런하게 움직일수록 열 손가락에서 아홉, 여덟.. 손가락 카운트 다운된다. 0이 될 때까지 인간종은 유행을 따라야만 한다.

산이 생겼다. 알록달록한 PET로 자연 형성된 산이다. 바다에도 둥둥 떠다닌다. 인간종은 산책하기도 오르기도 물놀이도 한다. 플라스틱으로 감싸진 지구에서 인간종은 일 년에 플라스틱 카드 한 장씩 몸에 적립을 한다. 살갗에 붉은 점들이 올라온다. 적립이 되었다는 표시다. 적립 숫자가 많을수록 유행의 선도자로 안다. 인간종의 수명은 100년, PET수명은 500년으로 한 세대에 기본 100장의 플라스틱 카드를 몸에 품고 PET산과 바다에 묻힌다. 마지막 순간, 인간은 101살의 욕망을 품고 아쉬운 실눈을 감는다.

<aside> 📎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볼 때 당신의 눈과 입술은 어떤 모습인가요. 서서히 부는 바람결이 당신의 체온을 만져주고, 나무에게 다가갑니다.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고 지나가려던 바람은 잠시 멈춰, 모든 생명체를 향해 찰랑찰랑 놀이를 시작합니다. 흐르는 강물들이 반짝임으로 일렁입니다. 자연이 주는 선물에 당신은 깊은 감동으로 충만해집니다. 그리고는 읊조리겠죠. 좋다… 당신이 미소 짓던 그 순간은 언제였나요. 찰나의 아름다움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지구가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은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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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8- 08.28 도시의 시간을 잇는 이야기 잡화점 도시간에서 현채아 작가가 고민하는 ‘패스트패션’을 주제로 재활용/재사용 되었다고 생각했던 헌 옷을 활용하여, 문제의식과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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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 현채아

우리는 모두 얽혀 있습니다.

계획 하에 얽히고, 계획 하지 않았지만 얽히고, 얽혀있는 저도 모르게 얽혀있고, 뜯고 끊어봐도 얽혀있는. 누군가는 벗고, 누군가는 입고, 누군가는 만들고, 누군가는 사용하고, 누군가는 사고, 누군가는 버리는.

끝도 없이 무한한 선을 그리며 연결되어있는 이 관계를 따라 거꾸로 올라가고 있자니, 시작점을 찾는 건 무의미 하다는것을 순간, 느낍니다.

다시 뒤를 돌아 우리는 어디로 향해 있는지, 방향의 전환점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우리가 완성하려는 그림들이 어떤 것인지 지금, 중요한 숙제인 것 같습니다.

얽혀있는 이 관계 속에서 우리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 걸까요? 저에게는 아직 끝맺음 없는 질문입니다. 서로가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기 전, 얽혀있는 우리의 모습을 함께 풀어나가면 어떨까합니다.

작가노트 re-collection